나는 측실의 딸이었다.
어디 소설에나 나올법한 불평을 할 생각은 없다. 아버지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어쩌다 그런 남자의 눈에 들었을 뿐이다. 아버지도 배다른 누이들도 악인은 아니었고, 나는 그렇게 평범하게 커왔다. 현 상황이 만족스럽기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반항하고 저항할 열정은 없는 평범한 삶. 그런 삶에 만족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나는 스물을 넘겼고 수도 내의 작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. 라이언 아저씨와 나, 단 둘이 운영하는 이 작은 도서관은 아직은 생소한 사회과학이라는 분야의 책만을 모아놓은 곳이었다. 소설이 있으면 로맨스 소설을 찾는 아가씨들이라도 올테고 병법이나 마법서가 있으면 전사나 용병들이라도 드문드문 찾을 것을 이 작고 희귀한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달 단위로도 두손에 꼽을 정도였고, 어느새 카운터는 내 전용 일터이자 독서장소가 되어 있었다.
그리고 그날은 유난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. 2시부터 하늘은 어두웠고 램프에 불을 댕겨 전날 처리하다 만 서류를 마저 정리하고 있었다.
“실례합니다만, 반납 들어와 아직 정리하지 않은 책은 어디에 있는지요”
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안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은 내 눈 앞에는 간만에 보는 새로운 이용자가 서 있었다. 거칠게 만든 갈색 로브는 제법 두꺼워 보였으나 비에 젖어 축축해보였다. 깊게 늘러 쓴 후드로 눈조차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법 장발일듯한 머리카락만은 앞으로 살짝 나와있었다.
“앗, 죄송합니다. 필요하신 책이 있다면 말씀을... 아, 아니 제목을 말씀해주시면 제가...”
“아닙니다. 제목으로 알 수 없을 것 같아서. 장소를 알려주시면...”
가볍게 손으로 후드를 벗어서 드러난 그의 모습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.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, 분명 미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대단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.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냥, 차분하지만 차갑지는 않은- 온화한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 사람. 빗소리도 멎고 내 숨소리도 멎어 이 세상의 공기를 진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그의 목소리 뿐일 것이라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람.
“아...아! 아 죄송합니다. 그렇다면 이쪽으로 와주세요. 아직 서가에 돌려놓지 못해 이쪽에 있습니다. 마침 오늘 아침에 대량으로 반납이 들어와서요...”
기둥 뒤 사각지대에 놓인 북트레이를 당겨 꺼냈다. 열권은 족히 될 책들이 엉성하게 쌓여져 있는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. 사서로서의 직무태만이 드러나는듯한 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.
“덕분에 좀 어지러져 있습니다. 남에게 보이는건 조금 부끄럽네요.”
“오늘...이라 함은?”
한손으로 책등들을 하나하나 훑으면서 이쪽으론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꺼낸다.
“일주일에 한번 꼴로 소장도서들을 수십권씩까지도 대출해가시는 분이 있거든요. 권수도 권수지만 분야도 워낙에 다양해서 도저히 한 사람이 읽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...공통점이라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저조차도 소장목록에 있었는지도 잘 몰랐던 – 다른 곳도 아니고 ‘이’ 도서관에서 말이예요! - 책들이라는 것 정도?”
“그렇군요. 여기도 그런 사람이 있다니... 아니, 여기라서-라고 하는게 맞을런가.”
살짝 굽혔던 허리를 다시 펴더니 멍하게 시선을 약간 위쪽으로 향한다. 그 반응과 ‘여기도’라는 단어에 조금 호기심이 동했지만 곧 단념했다. 이용자의 프라이버시이기도 하고, 무엇보다 지금 내가 남의 일에 오지랖을 펼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다.
“찾으시는 책이 없으시거나 궁금한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다시 말씀해주세요. 그럼 저는 돌아가보겠습-”
사근사근하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는 첫번째 책을 펴 들고 자리에 앉았다.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듯한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왔다.
그게 나와 시온님의 첫 만남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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